해리포터 호그와트 미스터리/창작 팬픽

루시엔 아리아 이야기-시즌 1-22: 천체 무도회 (3)

루시엔 아리아 2021. 11.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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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창작물은 '해리포터:호그와트 미스터리'의 원 저작물을 변형 및 각색하여 작성한 2차적 저작물로, 본 창작물의 저작권은 루시엔 아리아(본인)에게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상업적 이용을 금지합니다.


변신술 교실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아름다운 드레스 세 벌이 입혀져 있는 마네킹 사이를 돌아다니며 바쁘게 이곳저곳을 점검하는 안드레의 모습이 보였다.


"안드레, 나 왔어! 세상에... 너무 예쁘다!"


루시엔이 환한 얼굴로 감탄하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왔구나, 저주 해결사! 자, 여기 내가 너를 위해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의상 세 벌이야. 여기서 한 벌을 골라봐!"


안드레가 반갑게 루시엔을 맞아주며 뻐기듯이 말하자, 루시엔이 극적인 태도로 과장하며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뭐? 지금 장난해? 여기서 딱 한 벌만 고르라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를 만난 느낌인걸?!"


"큭큭큭. 이 옷들을 다 입고 패션쇼를 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내일 무도회에 입장할 때는 한 벌만 입어야 하잖아. 어쩔 수 없다구. 어서 마음에 드는 한 벌을 골라봐. 네 몸에 딱 맞게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손봐야 할 부분이 있으면 다시 손 봐야 하거든."


"알았어. 고마워, 안드레. 역시 멋의 마법사는 대단하구나!"


안드레가 킬킬거리며 말하자, 루시엔도 그제야 진심어린 목소리로 안드레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드레스를 골라보기 시작했다.


"흠... 아무래도 눈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한번 입고 나와 봐."


안드레가 이렇게 제안하자, 루시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씩 파티션 뒤에서 입어보고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은하수 컨셉의 드레스는... 음... 너랑 잘 어울리긴 하는데, 대연회장 장소에 들어가면 주변의 장식이랑 너무 동화되어 버릴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푸른색 은하수 컨셉의 드레스를 입고 나오자 안드레가 꼼꼼히 뜯어보며 이렇게 평했다.


"그럼 다음꺼 입어보고 나올게."


루시엔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번엔 동화 컨셉의 드레스를 가지고 파티션 뒤로 들어갔다.


"흠... 내가 만들긴 했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다음!"


그녀가 입고 나온 동화 컨셉의 드레스를 찬찬히 뜯어본 안드레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도 가차없이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한 디자인이지만, 쉬폰 소재로 프릴처럼 겹겹이 풍성한 A라인의 치맛자락에 상의는 몸에 딱 맞게 붙고, 네크라인이 깊게 파여 쇄골이 드러나는 오픈 슬링 숄더 형태의 자줏빛 쉬폰 드레스를 입고 나온 루시엔을 보며, 안드레는 박수를 쳤다.


"브라보! 바로 이거야! 역시 넌 훌륭한 모델이야, 루시엔."


"오! 정말 내가 봐도 이게 제일 예쁜 것 같아, 안드레! 이런 예쁘고 편한 드레스라니. 소재도 부드럽고 좋고, 춤출 때도 가벼워서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이 실감이 되는걸?!"


루시엔도 이리저리 거울 앞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며 좋아했다.


"자, 그럼 이제 좀 더 손볼 부분이 있나 보자. 음... 목에 자수정 목걸이를 해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머리는 이렇게 번 스타일로 올리고... 자수정 귀걸이랑 왕관 모양에 자수정이 박힌 뒤꽂이 머리핀을 하는 것도 좋겠어. 음... 그리고 또......"


그렇게 안드레는 이리저리 살펴보며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악세사리들과 구두를 수첩에 적어내려갔고, 천체 무도회의 분위기를 낼 수 있게 치맛자락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는 자그마한 보석을 여러개 달기로 했다.


"고마워, 안드레. 내일 내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 같아! 다 네 덕분이야."


루시엔이 미소를 지으며 안드레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자, 안드레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 번에도 내 모델 해 줘. 그러면 돼."


"당연하지! 디자이너 안드레 선생님께서 부탁하는데, 영광이네요."


루시엔이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는 고전적인 예법처럼 우아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그때, 변신술 교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아니, 이게 누구야? 혹시 다시 모델이 되어줄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안드레가 반색을 하며 그 사람을 향해 환한 얼굴로 물었다.


"...... 아냐. 꿈 깨, 이구."


탤벗이 잠시 넋을 놓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여긴 웬일이야?"


"맥고나걸 교수님이 교실에서 가져오라고 부탁하신게 있어서."


안드레가 실망한 목소리로 축 처진 채로 묻자, 그가 냉담하게 대답하며 루시엔을 힐끔거렸다.


"여기 우리 루시엔을 좀 봐봐! 너무 아름답지 않니?"


안드레가 킬킬거리며 자랑하듯 뽐내자 루시엔도 안드레의 장단에 맞춰주려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한바퀴 빙그르 돌아 보이며 드레스를 뽐냈다.


"어때?"


탤벗은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며 무심코 속마음이 말로 튀어나왔다.


"...... 아름다워."


"정말?"


그의 입에서 이런 솔직한 칭찬이 나올 줄은 몰랐던 루시엔이 깜짝 놀랐다.


"......! 너 말고. 드...드레스 말이야!"


탤벗이 자신이 내뱉은 말을 깨닫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황급히 정정했다.


"별말씀을. 이 안드레 이구 님의 작품이란 탤벗 윙거처럼 목석 같은 남자의 눈에도 눈에 띄게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지. 자, 이제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뮤즈님. 난 드레스랑 장신구들을 좀 더 손봐야 되니까. 완성된 드레스랑 장신구는 이따가 저녁 때 기숙사 휴게실에서 전해줄게."


안드레가 손을 내저으며 어서 갈아입고 나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안드레의 말을 들은 탤벗은 이번에도 자신이 괜한 말을 했구나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알겠어. 지금 갈아입고 나올게."


루시엔은 이렇게 말하고는 파티션 뒤로 들어가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안드레는 무언가 눈치 챈 사람처럼 탤벗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낮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윙거. 뭐야?"


"뭐가?"


탤벗이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그에게 되묻자, 안드레가 킬킬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아주 정신을 못 차리던걸? 너 쟤한테 마음 있는거 아냐?"


"...... 허튼소리 마, 이구. 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그래,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교실에 사람이 있어서 놀랐던 것 뿐이야."


그는 잠시 당황하였다가 곧 변명을 댔지만, 안드레는 이렇게 말했다.


"흠... 글쎄... 정말 그런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탤벗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맥고나걸이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안드레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들려왔다.


물론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아, 참! 내가 남자 모델이 되어달라고 바나비한테 부탁했는데, 걔는 루시엔이랑 커플룩으로 입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승낙하더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걔가 루시엔한테 파트너 신청을 하려고 다른 남학생들한테는 접근도 못하게 경고를 하고 다닌다던데?"


안드레가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말에, 맥고나걸의 책상 위에서 물건을 뒤적 거리며 찾고 있던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안드레를 향해 몸을 돌리는 모습이 마치 고장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뭐?!" 탤벗이 물었다.


"그 말 그대로야, 윙거. 같은 래번클로 동기로서 한마디 조언해주자면, 그렇게 머뭇거리다간 다른 녀석이 채간다? 그러니까 분발하라고."


그러면서 격려하듯이 탤벗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몸을 돌려 마네킹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루시엔이 곧 파티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안드레에게 고마워하며 이따 보자고 인사를 하고 탤벗에게는 혀를 쏙 내밀며 메롱을 한번 하고는 밝은 얼굴로 변신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탤벗은 무어라 대꾸하지도 못한 채,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대연회장에서 루시엔은 평소와 다름없이 로완, 페니, 통스와 함께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아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실컷 늦잠을 잘 수 있겠다! 하암..." 통스가 지친 기색으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넌 무도회 단장 안 해?" 페니가 옆에서 클램 차우더 스프를 한 숟갈 떠 먹으며 물었다.


"무도회 단장 그딴 거 그냥 대충 하고 가면 되지 뭐. 난 어차피 혼자 가서 재밌게 놀다 올건데, 엄마가 보내준 드레스만 대충 꿰어 입고 연회장으로 바로 달려갈 거야. 제일 먼저 와서 맛있는 다과를 선점해야지! 큭큭큭." 통스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페니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일 무도회 시작 전에 장식을 점검해야 할 것 같아. 로완, 너는 정말로 안 갈거야?"


"응, 정말로 안 가. 난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나 잔뜩 읽을래." 로완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쉽다... 우리 장식 위원회가 열심히 공들인 무도회장에서 즐기다 가면 좋을텐데... 그럼, 루시 너는? 같이 갈 파트너는 구했어?" 페니가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는 루시엔에게 물었다.


"나도 아마 통스처럼 혼자 갈 것 같아. 솔로 친구들끼리 재밌게 놀지 뭐!" 루시엔이 하하 웃으면서 대답했다.


"흐음... 내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아직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텐데...?"


페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혼잣말을 했다.


"참! 우리가 열심히 했던 그 장식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루시엔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거 말이지! 지금은 여기 대연회장 밑에 주방에 있어. 내일 무도회 시작 시간에 맞춰서 집요정들이 한꺼번에 다과랑 함께 그대로 옮겨주기로 했어." 페니가 신나게 대답해주었다.


"그렇구나,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페니. 맞다, 로완, 내일 도서관에 가기 전에 내 머리 손질 좀 도와줄 수 있어? 안드레가 틀어올린 머리를 하라는데, 혼자서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루시엔이 로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부탁했다.


"물론이지." 로완이 당밀 타르트를 한입 베어물며 흔쾌히 대답했다.


루시엔이 로완에게 고맙다고 하며 호박 주스를 마시던 그때, 바나비가 그녀가 앉아있는 래번클로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저기, 루시엔. 할 말이 있는데..."


바나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자, 네 소녀들의 시선이 바나비에게 집중되었다.


"뭔데?" 루시엔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음... 여기서 말고, 잠깐 안뜰로 가서 조용히 얘기하면 안될까..?"


바나비가 쑥쓰러운 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루시엔을 제외한 세 소녀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래. 식사도 거의 다 마쳤으니까, 지금 갈게. 그럼 내일 봐, 얘들아!"


루시엔이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봐, 루시!" 세 소녀들은 키득거리며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통스는 킬킬거리며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바나비의 뒤를 따라 조용한 안뜰로 온 루시엔은 그가 분수대에 걸터앉자, 그의 옆 자리에 따라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래?"


"음... 저기.... 있잖아...." 그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분수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들려오는 고요한 안뜰에서 그녀와 둘만 있으니 더욱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루시엔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인내심있게 그가 할 말을 기다려 주었다.


"......나랑 같이 천체 무도회에 갈래?"


그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아... 그 얘기였어? 그래! 같이 가자. 나도 파트너가 없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면 재미있겠다."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는 결국 그녀의 자발적인 신청을 못 받았다는 점에 실망하면서도 자신이 그녀의 파트너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에 기뻐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겠지... 그래, 승낙해줘서 고마워, 루시엔."


그가 기쁨과 실망이 뒤섞인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근처에서 푸드득 하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안뜰을 떠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달빛을 받아 보이는 형태로 보아하니 독수리 같았다.


"쟤는 대체 왜 저기에...?"


루시엔이 혼잣말로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바나비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인데?" 바나비가 그녀를 향해 다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럼 내일 만나, 바나비!" 루시엔이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며 생긋 웃었다.


"으응...... 내일 무도회 시작 시간에 맞춰서 래번클로 기숙사 앞으로 에스코트하러 갈게." 그가 쑥쓰러워하며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잘 자!"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가 에스코트를 하는 것처럼 서둘러 일어나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주었다.


"벌써부터 에스코트 해줄 필요는 없는데, 바나비?"


루시엔이 그가 붙잡은 손을 눈짓하며 키득거렸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아름다운 숙녀분과 함께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군요."


그가 미소를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며 붙잡은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에 정중하게 살짝 키스했다.


"천만에요. 멋진 신사분과 함께 참석하게 되어 기쁘네요."


그녀도 웃음을 꾹 참고는 그가 하는 것처럼 격식을 차리며 교복 치마를 살짝 쥐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인사해주었다.


"그럼, 잘 자. 루시엔!"


바나비는 그녀가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손을 놓아주었다.


"응, 내일 봐!"


그녀도 키득거리면서 밝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래번클로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바나비는 그 자리에 서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고,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가라앉을 때까지 심호흡을 하고 난 뒤, 슬리데린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바나비에게 그날 밤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평소처럼 홀로 저녁 식사를 하러 샌드위치를 들고 조용한 안뜰로 나와있던 탤벗은 우연히 바나비가 루시엔에게 파트너 신청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신경쓰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그 내용을 듣게 되자 그는 저절로 온 귀의 청각 세포가 그 쪽으로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해맑은 얼굴로 기쁘게 승낙하는 것을 들으며, 그는 가슴에 알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남아있는 샌드위치를 입 안에 밀어넣고는 애니마구스로 변신해서 안뜰에서 날아올랐다.


아니, 그 곳에서 도망쳤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는 지금 당장 어디로든 도망쳐야했다.


그곳에서 더 있다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뭐를 참을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의 감정에 의문을 품었다.


아까 들었던 광경을 머릿속으로 재생해 보자, 또 다시 심장 부근에서 불길이 이는 것 같았고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 오후에 변신술 교실에서 안드레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어떠한 특정한 생각에 미치자,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부정했다.


'말도 안 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걔를?'


지금까지 티격태격 하면서 서로 놀리고 조롱하던 여자애한테 무슨...


걔는 그냥... 성가신 여자애라서 그런게 분명했다.


아까 변신술 교실에서 나가면서 자신한테는 얄밉게 혀를 쏙 내밀고 가던 모습을 보라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은 그에게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드는것 같은 기분 나쁜 밤이었다.



다음 날, 천체 무도회가 열리는 당일이 되었다.


무도회는 오후부터 시작되어 저녁까지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천체 무도회에 참석하는 여학생들은 꽃단장을 하느라 오전부터 분주했다.


"내가 안 가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는게 뭔 줄 알아?"


로완이 루시엔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읽으면서, 루시엔의 얼굴에 얇게 썬 오이를 붙여주며 물었다.


"뭔데?"


루시엔은 잠옷 차림으로 자기 침대 위에 누워서 로완이 들고 있는 오이 접시에서 오이 슬라이스를 하나 집어서 얼굴에 붙이며 되물었다.


"바로 이런 귀찮은 단장때문이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다 참고 하는거야, 루시? 난 절대 못하겠어."


로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접시에서 오이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은래 이쁘즈르믄 으쯜스 읎스.(원래 이뻐지려면 어쩔 수 없어.)"


루시엔이 입가에도 마지막 오이 조각을 붙이고는 최대한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난 못하겠다구. 그냥 무도회 안가고 편하게 살래." 로완이 책장을 넘기며 어깨를 으쓱 했다.


로완의 책장이 몇 장 더 넘어갔을 무렵, 루시엔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얼굴에서 오이 조각을 떼어냈다.


"자, 이제 씻고 나올게! 나 머리 하는 것까지만 부탁할게, 로완!"


루시엔이 두 손을 꼭 모아쥐며 로완에게 강아지같은 눈망울을 들어 부탁했다.


"알았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


로완이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을 휘저어 얼른 갔다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고마워! 역시 넌 최고야!"


루시엔이 환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목욕 용품이 든 바구니를 챙겨들고 방 밖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루시엔은 이제는 자신의 시그니처 향이 되어버린 오렌지 꽃 향기를 맡으며 흥얼거리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목욕 가운을 입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본격적인 단장을 시작해볼까?"


루시엔이 콧노래를 부르며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마법으로 머리를 말리고는 어젯밤에 안드레가 준 드레스를 입었다.


머리를 손질할 때가 되자 로완은 책을 잠시 내려두고 루시엔의 머리를 빗질해주고는 틀어올린 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 이렇게 하면 되는거지?"


로완이 마지막으로 자수정 머리핀까지 꽂아 마무리하고는 묻자, 루시엔이 거울로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했다.


"응! 대단해, 로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쁜 것 같아!"


"이정도 쯤이야 뭐... 이 로완 칸나 님의 손에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훗!"


"큭큭큭. 고마워, 로완. 이제 가봐도 괜찮을 것 같아. 도서관으로 간다고?"


로완이 뻐기는 듯한 얼굴로 말하고는 키득거리자, 루시엔도 따라서 키득거리며 로완에게 물었다.


"으응... 도서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거야. 너도 무도회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


"응! 나중에 봐!"


로완이 이렇게 말하고는 책을 집어 들고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고, 루시엔도 손을 흔들어주며 방 밖으로 나가는 로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방에 홀로 남아,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안드레가 알려준 대로 연하게 화장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오후가 되어 있었고, 곧 바나비와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왔다.


루시엔은 드레스 겉에선 안보이게 달려있는 주머니 안쪽으로 요술 지팡이를 챙겨 넣고 구두를 신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기숙사 휴게실에는 벌써 단장을 마치고 내려와 있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루시엔이 내려오자 그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루시엔은 서둘러 기숙사 바깥으로 나가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가 기숙사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청동 독수리 문 근처에 안드레가 만들어준 근사한 연회복으로 차려입은 바나비가 서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나온 루시엔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을 놓았다.


"바나비! 먼저 와 있었구나. 많이 기다렸어?"


루시엔이 환한 얼굴로 그를 향해 다가오며 묻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얼빠진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아...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바...방금! 방금 막 왔어."


그러자 루시엔이 키득거리며 물었다. "나 어때? 안드레가 엄청 공들여서 만들어준 드레스야. 잘 어울려?"


그녀가 이렇게 물으며 그 자리에서 빙그르 한 바퀴 돌아보이자,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너무 예뻐...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그가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자, 루시엔도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고마워, 바나비. 그러면 이제 갈까?"


바나비는 환한 미소를 되찾고는 그녀에게 왼쪽 팔을 내밀었고, 그녀도 따라서 미소지으며 즐거운 듯이 그의 팔을 붙잡고 함께 대연회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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