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엔 아리아 이야기-시즌 1-72: 공공연한 비밀 (2)
본 창작물은 '해리포터:호그와트 미스터리'의 원 저작물을 변형 및 각색하여 작성한 2차적 저작물로, 본 창작물의 저작권은 루시엔 아리아(본인)에게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상업적 이용을 금지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고 홀로 다니는 그 외톨이 탤벗 윙거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호그와트에서 그 유명한 저주 해결사와 예술가, 두 여학생들의 마음을 얻었단 말인가?
게다가 두 여학생 모두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매번 파트너를 데려오는 행사 때마다 다른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비록 바나비에 의해 많이 드러나진 않고 있었지만) 루시엔과는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으니, 듣는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대체 외톨이 윙거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거야? 물론 걔가 키도 크고 잘생기긴 했지만, 너는 말 그대로 키 크고 몸좋고 잘생긴 걸로 호그와트에서 제일 인기많은 바나비의 공개 고백도 거절했었잖아."
통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을 던지자, 루시엔이 화르륵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음... 사실, 나는 탤벗이 외면 보다도 내면이 더 멋진 사람이라 좋아... 그 애는 자상하고 다정하기도 하고, 또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하고, 장래에 훌륭한 오러가 되고 싶대! 왜냐하면 세계 평화를 위해 힘을 보태고 싶기 때문이래. 그렇게 고귀한 소망을 가진 멋진 애가 나한테 푹 빠져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안 좋아하고 배기겠어?"
"어휴...! 나 괜히 물어봤나봐. 윙거 녀석을 찬양하는 루시엔이라니... 오글거려서 죽겠어!"
그녀의 대답을 듣자, 통스는 괜히 물어봤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로완과 페니는 깔깔대며 웃었다.
반면, 빌과 찰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 형제나 다름없는 루시엔이 이렇게 푹 빠져 있는 녀석이니, 이젠 우리도 그 녀석을 의형제로 인정해줘야겠다, 형."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버로우로 함께 놀러와! 두 팔 벌려 환영해줄테니까. 큭큭큭."
루시엔은 함께 키득거리며 위즐리 형제의 농담에 고맙다고 말하고는, 바디아에게 보낼 쪽지를 써서 망토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오후 수업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이었기 때문에 점심 식사를 마친 루시엔과 로완은 찰리와 함께 수업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번 수업은 신비한 동물 소동 없이 평소처럼 진행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찰리가 수업을 기대하는 얼굴로 말하자, 로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이제 곧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휴강하게 된다면 진도에 타격이 클 테니까."
"벌써 시험 공부를 시작한 거야, 로완? 아직 시험까진 한 달이나 남았는데!"
찰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외치자, 루시엔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찰리. 로완이 열심히 공부하는건 늘상 있는 일인데 뭐."
"한 달밖에 안 남은 이 시점에 공부 계획표를 재정비했는데, 지금까지 휴강도 몇 차례 했던걸 고려하면 이번에도 빠듯해."
로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젯밤에 재정비한 공부 계획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역시 래번클로란..."
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고, 그들은 곧 수업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도착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바나비가 루시엔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루시엔은 평소처럼 마주 인사해주며 아무 생각없이 바나비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갑자기 강렬한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선 탤벗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루시엔은 그의 딱딱한 표정을 보자 그가 지금 이 상황을 약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바나비에게 미안해하며 입을 열었다.
"음... 바나비, 미안한데 오늘은 다른 친구랑 짝꿍해야 할 것 같아."
"왜?"
"오늘 이 수업 끝나고 잠깐 나랑 검은 호수에서 산책할래? 자세한 이유는 그때 얘기해줄게. 미안해..."
바나비는 축 처진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고, 루시엔은 미안해하며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주기로 약속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탤벗은 질투심에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키며 그녀에게 손을 뻗어 내밀었다.
"화났어, 탤?"
그녀가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아오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사실은... 네가 바나비 리와 함께 있는걸 보면서 질투심이 나서 그랬어. 난 널 믿지만, 그래도 그 녀석은 너한테 공개적으로 고백도 했었던 녀석이잖아... 그래서 내가 좀 예민했던 것 같아."
"네 기분이 어떨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미안해, 탤."
루시엔이 잡고 있는 손으로 그의 손등을 달래듯이 문지르자, 그가 피식 웃으며 풀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괜찮아, 루시. 네가 나한테 와줬잖아."
그의 부드러워진 표정을 살피며 루시엔은 작게 웃었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얼굴로 본론을 꺼냈다.
"있잖아, 탤. 이따 수업 끝나고 잠깐 바나비랑 이야기좀 하려고. 그... 우리가 사귀기로 했다는 얘기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네가 이해해줬으면 해. 바디아 한테는 쪽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네가 부엉이장에 가서 좀 보내줄래?"
"알겠어."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단한 신뢰감을 보여주었고, 곧 이어 케틀번 교수가 오면서 오후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탤벗과 함께 짝을 지어서 듣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은 의외로 사소하지만 뚜렷한 장단점이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에도 꽤 재능이 있었고, 수업 태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학습 방면에 있어선 좋은 짝꿍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동물을 돌보다가 손이라도 스치거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금방 집중을 잃게 되는게 사소한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또 우연을 가장한 접촉이 유난히 많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수업이 끝날 무렵, 루시엔은 책가방을 챙기며 탤벗에게 작게 투덜거렸다.
"탤, 다음 수업부터는 원래 수업 듣던대로 돌아가는게 좋겠어. 너 때문에 수업에 집중이 잘 안 돼."
"왜? 크흠... 내가 뭘 했길래?"
그가 웃음을 참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시치미를 뚝 떼자, 루시엔이 그를 째려보며 타박했다.
"네가 자꾸 우연을 가장해서 내 손 잡으려고 한 거 다 알아. 내 머리카락에 뭐가 묻었다고 하면서 떼어준 것도 다 그런 속셈이었지? 이러다가 수업에 집중 못해서 성적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탤벗이 눈을 도르륵 굴리며 웃음을 참는 얼굴로 어깨를 한번 으쓱하자, 루시엔은 얄밉다는 듯이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쪽지를 건네주고 몸을 홱 돌렸다.
"흥! 엉큼한 독수리 같으니라구. 이거나 바디아한테 전달해 줘. 난 간다!"
"알았어, 미안해, 루시! 사과의 의미로 이따가 밤에 같이 야간 비행 갈래?"
그가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으며 사과했고, 그녀가 무척 좋아하며 즐기는 야간 비행을 제안 하자, 루시엔은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페이스에 이대로 휘말릴 순 없었다.
"우리 시험 기간인거 잊었어? 로완은 어제 공부 계획도 새로 짰대. 나도 이제부터 공부해야돼."
"그러면 같이 공부하고 바람쐬러 비행 나가면 되겠네."
그가 다시 이렇게 제안하자, 이번엔 거절할 명분이 없어졌다.
"그럼... 에잇! 대신 맛있는거 챙겨와! 공부하면서 출출할 때 같이 먹게."
그녀의 입에서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지자 그는 다시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따 보자고 한 뒤 부엉이장으로 향했다.
루시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멀찍이서 퍼프스캔과 놀고 있던 바나비에게로 달려갔고, 두 사람은 곧 검은 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먹구름이 잔뜩 낀 회색빛 하늘 아래, 호숫가 주변을 함께 산책하던 루시엔은 바나비와 일상적인 수다를 떨면서 본론을 꺼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은 호숫가 자갈에 찰박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멈춰섰다.
그녀는 바닥에서 동그란 자갈 하나를 골라 주워들고는 호수 표면으로 물수제비를 던지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 바나비... 할 말이 있어."
바나비도 자갈을 하나 주워들며 호수 표면을 향해 물수제비를 던지며 대꾸했다.
"무슨 말인데?"
루시엔은 바나비가 던진 물수제비가 멀리 가볍게 통통 튀며 수면 위로 날아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넌 나의 좋은 친구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으로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보단 내가 직접 얘기해주고 싶었어. 비록 네가 나한테 마음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직접 솔직하게 말해주는게 네가 나에게 전해준 진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거든."
"......"
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해보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다시 물수제비를 던지기 위해 자갈을 주워들었다.
"난 탤벗이 좋아. 그리고... 얼마 전 우린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
바나비가 던진 자갈이 무겁게 '풍덩!' 소리를 내며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그의 심장이 뚝 떨어져 차갑고 깊은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 해줄 말은 그게 다야..?"
자갈이 가라앉은 곳에서 번져온 파문이 그들이 서 있는 호숫가까지 밀려왔다.
"음... 그리고 미안해... 지금 당장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나는 널 정말 소중한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널 위해 다른 사람들한테 전해듣는 것 보단 이렇게 직접 말해주는게 도리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넌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야."
"에이! 난 또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나 했더니, 그 얘기였어?"
그가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며 밝은 목소리로 과장되게 말했다.
"으응... 이런 얘기라 미안해..."
루시엔은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괜찮은 것인지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바나비는 거짓으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활발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말했다.
"에이, 미안할 거 없어! 너희가 사귀는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일걸?! 하하하! 게다가 내가 누구야?"
"으음... 바나비 리?"
"호그와트 최고 인기남 아니야?! 이미 나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넘쳐나거든? 하하하! 걱정할 필요 없어, 루시엔!"
"그래도..."
"정말 괜찮다니까?! 넌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해. 나처럼 머리를 비우고 속 편하게 살아도 돼, 루시엔."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루시엔은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어 저절로 미소지어졌다.
"네가 정말로 괜찮다면... 다행이야..."
"난 괜찮아..."
"그럼... 우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친구일 수 있는 거지...?"
"두 말하면 잔소리지. 내가 누구라고?" 바나비가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다시 재차 물었다.
"호그와트 최고 인기남 바나비 리!" 루시엔이 이렇게 대답하며 다시 환하게 웃자, 바나비도 따라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바나비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슬픔이 번져왔다.
마치 아까 호수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자갈이 만들어낸 파문처럼.
'넌 왜 이렇게 다정해서 마음대로 끊어내지도 못하게 하는거야. 네가 차라리 못된 애였다면 마음껏 욕이라도 하고 잊어버릴텐데...'
때마침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먹구름 낀 하늘에서 굵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앗! 비가 온다! 어서 성으로 돌아가자!"
루시엔이 한 손으로는 그를 잡아끌며,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이 든 책가방이 젖지 않게 교복 망토 안에 감싸안고는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나비는 그녀의 손에 붙잡혀 달려가면서 온 몸에 소나기를 맞으며 소리없이 울었다.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소나기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눈물이었다면, 그녀에게 붙잡힌 손이 괜히 따뜻해서 그런 것이리라.
호그와트 성 1층 로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물에 빠진 생쥐같은 몰골이었다.
"어휴! 이렇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루시엔이 쫄딱 젖어버린 망토 소매를 손으로 꾹꾹 짜내며 후두둑 떨어지는 물기를 털면서 말했다.
"그러게...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 안 그러면 감기 걸리겠어."
바나비도 얼굴에서 물기를 훔쳐내며 약간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벌써 감기에 걸린 거 아냐? 바나비, 어서 병동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루시엔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염려하며 요술지팡이로 따뜻한 바람을 만들어내 서둘러 그를 말려주기 시작하자, 바나비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재촉했다.
"너부터 어서 말려, 루시엔. 나는 음... 바람 마법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빨리 기숙사에 돌아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돼!"
"나 때문에 네가 감기라도 걸리면 미안해서 어떡해!"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재빨리 이리저리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며 말려주는 모습을 보며, 바나비가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다.
"어서 돌아가자! 나중에 봐, 루시엔!"
"그...그래! 나중에 봐, 바나비!"
그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달려가자, 루시엔도 나중에 보자며 손을 흔들고는 래번클로 기숙사가 있는 래번클로 탑으로 향했다.
저녁에 흠뻑 비를 맞고 달려왔기 때문인지 계단을 올라가며 그녀는 한 두번씩 재채기를 해댔다.
"우리 기숙사는 창밖 풍경은 멋지지만,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많다니까."
그녀가 작게 투덜거리면서 따뜻한 공기 마법으로 애써 젖어있는 망토를 말리며 추위로 오들거리는 몸을 아직 축축한 망토로나마 꼭 여몄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 쯤이 되자, 비를 맞아 흠뻑 젖었던 물기는 거의 다 말리는데 성공했지만,
오늘따라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래번클로 기숙사 안에 들어서자 갑자기 오한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으으..."
루시엔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서둘러 여자 기숙사로 올라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래번클로 학생 아니랄까봐 망토 안에 고이 감싸안고 온 덕에 다행히도 책가방 안의 교과서와 공책들은 무사했다.
그녀는 옷가지와 목욕 용품을 챙겨들고는 서둘러 방 밖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오니, 온 몸이 노곤해지는게 아까의 긴장감이 풀려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바나비에게 더 이상 감정적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솔직하게 털어놓기 이전에, 그가 상처받는 것을 굉장히 염려하며 자신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다 저녁 무렵 소나기를 흠뻑 맞고 돌아오니 살짝 미열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루시엔은 잠깐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거라 생각하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따가 탤벗이 오기 전까지만 자고 일어나야지...'
루시엔은 이마에 닿는 시원하고 축축한 감촉을 느끼며 눈을 떴다.
왜 이렇게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고 몸은 물먹은 스펀지마냥 축축 처지는 건지.
귀에선 호그와트 증기 기관차처럼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침대 옆 벽에 걸린 작은 나이트 스탠드에서 비추는 조명만이 전부인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의 침대 맡에 앉아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탤벗의 모습이 보였다.
"탤... 벌써 왔어? 아니면 내가 늦잠을 자버린 건가?"
루시엔이 푹 잠긴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일어나려 하자, 탤벗이 그녀를 만류했다.
"일어나지 마. 그냥 누워있어."
"으응... 근데, 우리 같이 시험 공부도 하고 야간 비행 하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갈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결국 탤벗은 작게 화를 냈다.
"네가 아픈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검은 호수에 산책하러 간게 아니고 이 날씨에 수영이라도 하고 온 거야? 이렇게 지독한 감기에 걸려가지고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냥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정도였는데 뭐... 지금은 아직 잠이 좀 덜깨서 그런 것 같고..."
"이 바보야! 내가 왔을때 네가 얼마나 고열로 끙끙 앓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내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그가 작게 타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이마에 놓인 수건을 갈아주고 체온을 쟀다.
그의 표정, 말투, 손짓 등 모든 것에서 걱정해주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커다란 손을 끌어와 얼굴을 비볐다.
"우웅, 네 심장은 무사할거야. 왜냐면 내가 네 심장(heart)이니까? 헤헤."
루시엔의 이와 같은 애교에 탤벗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으으...! 아픈 여자 친구한테 다짜고짜 키스할 수도 없고..."
"히히힛! 이 참에 인내하는 법을 제대로 익혀봐, 엉큼한 독수리같으니."
루시엔이 푹 잠긴 목소리로 키득거리며 놀리자, 그가 입술을 꼭 깨물며 그녀를 잠시 째려보더니, 곧 한숨을 내쉬며 항복한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챙겨온 간단한 식사가 담긴 간이 트레이와 후추가 뿌려진 마법약을 가져왔다.
"어서 식사하고, 약 먹고, 푹 자."
루시엔은 키득거리면서 그가 정성스럽게 손수 떠먹여주는 음식과 약을 아기새처럼 얌전히 받아 먹다가,
"다 나으면 두고 봐."
이어진 그의 말에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뭐?! 켁켁...!!"
그는 예쁘게 눈을 접어 웃으면서 사레가 걸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고, 입가에 묻은 약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아니, 입에 묻은 걸 닦아주는것 뿐인데, 손길이 진득하게 느껴지는건 대체 뭐냐고..!'
루시엔은 괜히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 것 같아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시 열이 오르는건가?"
그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어보더니, 다시 그녀의 이마에 시원한 물수건으로 갈아주며 그녀를 살뜰히 간호했다.
"푹 자. 푹 자고 일어나서 얼른 건강해져야지... 네 말처럼, 이젠 네가 내 심장(heart)이니까."
그가 바보같이 피식피식 웃으며 그녀의 고운 손을 가져와 아까 그녀가 했던 것처럼 얼굴을 비비고는 손등에 뜨거운 입술로 도장을 찍듯이 꾹 내리눌렀다.
그녀는 약 기운이 돌며 몽롱한 와중에도 그가 돌려준 말에 작게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서서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잠에 빠져들며 이런 말을 흘린 것도 같았다.
'고마워...나의.. 엉큼한...독...수리...'